리눅스 배포판 계보에 숨은 57년의 결별사, 유닉스부터 우분투까지

리눅스 배포판 계보를 처음 펼쳐보면 누구나 당황합니다. 우분투, 데비안, 레드햇, 페도라, 아치, 알파인까지 이름만 수백 개가 넘는데, 어디서 갈라졌고 왜 갈라졌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복잡한 지도를 시간순으로 되감아 보면, 놀랍게도 1969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벌어진 하나의 프로젝트 실패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배포판 계보는 족보 암기가 아니라, 57년에 걸친 갈등과 결별의 역사입니다.
| "우분투랑 데비안이랑 뭐가 다른 거예요?" "CentOS 없어졌다던데 그럼 서버는 뭘 써야 하나요?" "리눅스 종류가 왜 이렇게 많아요? 하나로 합치면 안 돼요?" "아치 리눅스는 왜 어렵다고 소문났나요?" |
서버를 운영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정말 자주 받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배포판 이름을 그냥 외웠습니다. 그런데 2020년 말 CentOS 종료 발표를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계보를 모르면 "다음에 뭘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배포판의 족보는 곧 그 배포판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지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유닉스의 탄생부터 GNU와 리눅스 커널의 결합, 3대 배포판 가문의 형성, CentOS 종료 사태, 그리고 컨테이너 시대의 재편까지를 시간순으로 따라갑니다. 리눅스를 처음 공부하는 분, 서버 배포판 선택을 앞둔 분, 그리고 "왜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궁금했던 분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목차
- 1969년 벨 연구소, 유닉스가 태어난 사연
- 유닉스 전쟁과 BSD, 첫 번째 결별
- 1983년 GNU 프로젝트, 커널이 없는 운영체제
- 1991년, 헬싱키 대학생의 취미 프로젝트
- 배포판의 탄생, 1993년의 슬랙웨어와 데비안
- 레드햇 계열, 리눅스로 돈을 버는 방법
- 2004년 우분투, 데비안 가문의 대중화
- 독립 계열, 아치와 수세와 젠투
- 2020년 CentOS 종료 사태, 계보가 다시 갈라지다
- 컨테이너 시대의 배포판, 알파인과 특수 목적 리눅스
- 2026년 현재 리눅스 배포판 계보 지도
- 리눅스 배포판 계보 FAQ
- 계보를 알면 다음 선택이 보입니다
1. 1969년 벨 연구소, 유닉스가 태어난 사연
리눅스 배포판 계보의 뿌리를 찾으려면 리눅스가 태어나기 22년 전으로 가야 합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벨 연구소는 MIT, GE와 함께 멀틱스(Multics)라는 야심 찬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컴퓨터를 동시에 쓰는 시분할 시스템을 목표로 했는데, 프로젝트가 너무 비대해지면서 벨 연구소는 1969년 결국 손을 뗍니다.
그런데 이 실패가 뜻밖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멀틱스에 참여했던 켄 톰프슨(Ken Thompson)이 연구소에 굴러다니던 구형 PDP-7 컴퓨터로 훨씬 단순한 운영체제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 데니스 리치(Dennis Ritchie)가 합류했고, 이것이 유닉스(Unix)가 됩니다. 멀틱스의 복잡함을 비꼬는 듯한 이름이었습니다.
결정타는 1973년에 나왔습니다. 리치가 만든 C 언어로 유닉스를 다시 작성한 것인데, 이전까지 운영체제는 특정 기계의 어셈블리어로 짜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C로 작성된 유닉스는 다른 기종의 컴퓨터로 옮기기가 비교할 수 없이 쉬웠고, 덕분에 대학과 연구소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작은 도구를 조합해 큰 일을 한다"는 유닉스 철학도 이때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터미널에서 파이프(|)로 명령어를 이어 붙이는 습관이 바로 이 시절의 유산입니다.
2. 유닉스 전쟁과 BSD, 첫 번째 결별
유닉스가 대학가로 퍼진 데에는 법적인 사정도 있었습니다. 당시 벨 연구소의 모회사 AT&T는 독점 규제 때문에 컴퓨터 사업을 할 수 없었고, 유닉스를 대학에 소스 코드째 저렴하게 배포했습니다. 그 소스 코드를 받아 가장 열심히 개조한 곳이 UC 버클리였습니다. 버클리는 1978년부터 자신들의 개선판을 BSD(Berkeley Software Distribution)라는 이름으로 배포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1980년대에 터졌습니다. AT&T가 분할되면서 컴퓨터 사업 규제가 풀리자, 유닉스를 상업 제품으로 팔기 시작한 겁니다. 라이선스 비용은 치솟았고, 소스 코드는 닫혔습니다. 여기에 각 제조사가 저마다의 상용 유닉스(썬의 SunOS, IBM의 AIX, HP의 HP-UX 등)를 내놓으면서 시장은 호환되지 않는 유닉스들로 쪼개집니다. 이 시기를 흔히 유닉스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급기야 1992년에는 AT&T 측이 BSD 진영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까지 겁니다. 소송은 합의로 끝났지만, 이 소송 기간 동안 BSD 계열의 확산이 멈칫한 사이에 등장한 것이 바로 리눅스였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 소송이 없었다면 지금 서버 시장의 주인공은 리눅스가 아니라 BSD였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됩니다. BSD의 후손인 FreeBSD와 OpenBSD는 지금도 살아 있고, macOS의 뿌리에도 BSD의 피가 흐릅니다.
3. 1983년 GNU 프로젝트, 커널이 없는 운영체제
유닉스가 상업화되고 소스 코드가 닫히는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MIT의 프로그래머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입니다. 그는 1983년, 누구나 자유롭게 쓰고 고치고 나눌 수 있는 유닉스 호환 운영체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겠다고 선언합니다. 프로젝트 이름은 GNU였습니다.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GNU's Not Unix)"라는 재귀적인 말장난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GNU 프로젝트는 10년 가까이 놀라운 성과를 쌓았습니다. 지금도 쓰이는 컴파일러 GCC, 편집기 이맥스(Emacs), 셸인 배시(bash), 각종 핵심 유틸리티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유지시키는 법적 장치인 GPL 라이선스도 이 프로젝트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 가장 중요한 부품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운영체제의 심장인 커널이었습니다. GNU의 자체 커널인 허드(Hurd)는 개발이 계속 늦어졌고, 몸통은 다 있는데 심장만 없는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 💡 커널과 배포판의 관계 커널은 하드웨어를 직접 다루는 운영체제의 핵심부이고, 배포판은 그 커널 위에 셸, 컴파일러, 패키지 관리자, 각종 프로그램을 얹어 "설치해서 바로 쓸 수 있게" 포장한 완성품입니다. 리눅스라는 이름은 엄밀히는 커널만을 가리키고, 우리가 설치하는 것은 전부 배포판입니다. 배포판이 수백 개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4. 1991년, 헬싱키 대학생의 취미 프로젝트
비어 있던 심장은 뜻밖의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1991년 8월,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21살 학생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가 유즈넷 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자신이 취미로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는데, "GNU처럼 크고 전문적인 건 아닐 것"이라는 겸손한 소개였습니다. 그는 교육용 유닉스인 미닉스(Minix)를 쓰다가 성에 차지 않아 직접 커널을 짜기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이 취미 프로젝트가 폭발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타이밍입니다. BSD는 소송에 발이 묶여 있었고, GNU는 커널이 없었고, 상용 유닉스는 비쌌습니다. 리눅스 커널과 GNU 도구들을 결합하면 완전한 자유 운영체제가 즉시 완성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발 방식입니다. 토르발스는 GPL 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 개발자의 수정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당처럼 소수 정예가 짓는 게 아니라 시장 바닥처럼 왁자지껄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이게 통했습니다.
여기서 하나 바로잡아 둘 게 있습니다. 이 글의 예전 버전에서는 리눅스를 "오픈소스 언어"라고 잘못 표현했었습니다. 리눅스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라 C 언어로 작성된 운영체제 커널입니다. 주소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내용은 이번에 정확하게 고쳐 씁니다.
5. 배포판의 탄생, 1993년의 슬랙웨어와 데비안
커널이 공개되자 곧바로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커널과 GNU 도구를 일일이 내려받아 조립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겁니다. 그래서 미리 조립된 꾸러미, 즉 배포판이 등장합니다. 초창기 배포판 SLS의 완성도에 실망한 패트릭 볼커딩(Patrick Volkerding)이 1993년 7월에 내놓은 슬랙웨어(Slackware)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배포판입니다. 유닉스의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고 자동화를 최소화하는 철학은 지금까지도 그대로입니다.
같은 해 8월, 이언 머독(Ian Murdock)이 데비안(Debian)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데비안이 계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특정 기업이 아닌 자원봉사자 공동체가 사회 계약이라는 문서까지 만들어 운영한다는 점, 그리고 패키지 의존성을 자동으로 풀어주는 APT라는 패키지 관리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는 점입니다. 프로그램 하나를 깔기 위해 필요한 다른 프로그램들을 알아서 챙겨주는 이 방식은 당시로선 혁명에 가까웠고, 데비안이 수많은 파생 배포판의 어머니가 되는 토대가 됐습니다.
6. 레드햇 계열, 리눅스로 돈을 버는 방법
공짜 운영체제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는 질문에 처음으로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은 회사가 레드햇(Red Hat)입니다. 1995년 Red Hat Linux 1.0을 내놓은 이 회사는 소프트웨어 자체가 아니라 지원과 책임을 파는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서버가 멈췄을 때 전화할 곳이 있다는 것, 기업에게는 그게 돈을 낼 이유였습니다.
2003년 레드햇은 계보에 큰 획을 긋는 결정을 합니다. 무료 버전인 Red Hat Linux를 단종하고 제품군을 둘로 쪼갠 겁니다. 최신 기술을 실험하는 무료 커뮤니티 배포판 페도라(Fedora)와, 페도라에서 검증된 것만 골라 담아 10년씩 지원하는 유료 제품 RHEL(Red Hat Enterprise Linux)로요. 페도라가 상류, RHEL이 하류인 강물 구조입니다. 그리고 2004년, RHEL의 소스 코드를 그대로 다시 빌드해서 무료로 배포하는 CentOS가 등장합니다. RHEL의 안정성을 공짜로 누릴 수 있으니, CentOS는 이후 15년 넘게 국내외 서버 시장의 표준처럼 쓰였습니다. 이 구도가 2020년에 무너지리라고는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레드햇 계열의 상징은 RPM 패키지와 yum(현재는 dnf) 관리자입니다. 데비안 계열의 .deb와 APT에 대응하는 짝이라고 보면 됩니다. 패키지 형식이 다르다는 건 단순한 기술 차이가 아니라 가문이 다르다는 표식에 가깝습니다.
7. 2004년 우분투, 데비안 가문의 대중화
데비안은 훌륭했지만 느렸습니다. 안정성을 위해 릴리스 주기가 몇 년씩 늘어지기 일쑤였고, 설치도 초보자에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틈을 파고든 사람이 남아공 출신 사업가 마크 셔틀워스(Mark Shuttleworth)입니다. 그가 세운 캐노니컬(Canonical)은 2004년 10월, 데비안을 기반으로 6개월마다 꼬박꼬박 릴리스하고 설치가 쉬운 우분투(Ubuntu)를 내놓습니다.
우분투의 성공 공식은 명확했습니다. 데비안의 방대한 패키지 자산을 물려받되, 정해진 날짜에 릴리스하는 예측 가능성과 2년마다 나오는 LTS(장기 지원) 버전을 더한 것입니다. 특히 5년씩 지원되는 LTS는 서버 관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클라우드 시대가 열리자 AWS와 같은 클라우드에서 가장 흔히 선택되는 이미지가 됐습니다. 가장 최근의 LTS인 우분투 26.04(Resolute Raccoon)는 2026년 4월 23일에 출시됐습니다. 우분투에서 다시 갈라져 나온 리눅스 민트(Linux Mint)처럼, 파생의 파생이 이어지며 데비안 가문은 계보도에서 가장 가지가 무성한 나무가 됐습니다.
8. 독립 계열, 아치와 수세와 젠투
모든 배포판이 데비안이나 레드햇의 후손인 것은 아닙니다. 독자적인 뿌리에서 출발한 가문들도 있습니다.
아치 리눅스(Arch Linux)는 2002년 저드 비넷(Judd Vinet)이 시작했습니다. 단순하게 유지하라는 KISS 원칙 아래, 설치부터 구성까지 사용자가 직접 결정하게 만듭니다. 버전 개념 없이 항상 최신 상태로 굴러가는 롤링 릴리스 방식과, 방대한 사용자 문서인 아치 위키가 상징입니다. 어렵다고 소문난 이유는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대신 결정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인기를 끄는 게이밍 배포판들이 아치 기반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세(SUSE)는 1992년 독일에서 창업해 유럽 기업 시장에서 레드햇과 맞서 온 가문입니다. 초기에는 슬랙웨어 기반으로 출발했다가 독자 노선으로 정착했고, 기업용 SLES와 커뮤니티판 openSUSE의 이원 구조는 레드햇의 RHEL·페도라 구조와 닮은꼴입니다. 젠투(Gentoo)는 2002년 등장한 특이한 가문으로, 모든 소프트웨어를 자기 컴퓨터에서 직접 컴파일해서 설치합니다. 극한의 최적화와 학습 효과를 얻는 대신 시간을 지불하는 방식이라, 계보도에서는 소수 정예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9. 2020년 CentOS 종료 사태, 계보가 다시 갈라지다
2020년 12월, 레드햇은 CentOS 프로젝트의 방향 전환을 발표합니다. RHEL을 그대로 복제하던 CentOS Linux를 끝내고, RHEL보다 앞서 가는 개발 브랜치인 CentOS Stream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물의 흐름이 뒤집힌 겁니다. 원래 페도라에서 RHEL로, RHEL에서 CentOS로 흐르던 물길이, 이제는 페도라에서 CentOS Stream으로, 거기서 RHEL로 흐르게 됐습니다. RHEL의 무료 복제품이라는 CentOS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진 셈입니다.
서버 업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CentOS 8은 2021년 말에, CentOS 7은 2024년 6월에 지원이 끝났고, 그 위에서 돌아가던 수많은 서버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저도 이 시기에 이전 대상 서버 목록을 만들며 계보도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이 공백에서 새 가지가 자라났습니다. CentOS 공동 창립자였던 그레고리 커처(Gregory Kurtzer)가 만든 록키 리눅스(Rocky Linux)와, 클라우드리눅스사가 시작해 재단으로 독립한 알마리눅스(AlmaLinux)입니다. 둘 다 옛 CentOS처럼 RHEL 호환 무료 배포판을 표방하며 2021년에 첫 정식판을 냈습니다.
| 📌 CentOS 사태가 남긴 교훈 배포판을 고를 때는 기술 사양만이 아니라 "누가, 왜 이것을 유지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단일 기업의 결정 하나로 배포판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CentOS가 증명했습니다. 계보와 지배 구조를 아는 것이 곧 위험 관리입니다. |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3년 레드햇이 RHEL 소스 코드의 공개 범위를 좁히자, 오라클과 수세, 커처의 회사 CIQ가 OpenELA라는 연합을 만들어 호환 소스를 공동 확보하는 대응에 나섰습니다. 유닉스 전쟁 시절의 갈등 구도가 형태를 바꿔 반복되는 모습이라, 계보도를 아는 사람에게는 묘한 기시감을 주는 장면입니다.
10. 컨테이너 시대의 배포판, 알파인과 특수 목적 리눅스
2013년 도커(Docker)의 등장은 배포판 계보에 새로운 압력을 가했습니다. 컨테이너 시대에는 운영체제 이미지가 작을수록 좋습니다. 여기서 주목받은 것이 알파인 리눅스(Alpine Linux)입니다. 표준 라이브러리와 기본 도구를 가벼운 것들로 갈아 끼워 기본 이미지가 수 메가바이트에 불과한데, 덕분에 도커 허브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베이스 이미지 중 하나가 됐습니다. 어느 가문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혈통이 컨테이너라는 새 환경에서 주류로 올라선 사례입니다.
목적 특화 배포판들도 계보의 곁가지를 채우고 있습니다. 데비안 기반의 칼리 리눅스(Kali Linux)는 모의 해킹과 포렌식 도구를 묶은 보안 전문가용 배포판이고, 라즈베리 파이의 기본 운영체제도 데비안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범위를 넓히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리눅스 커널 기반 운영체제는 사실 안드로이드입니다. GNU 도구 대신 자체 사용자 환경을 얹어 통상의 배포판 계보와는 따로 분류하지만, 커널의 족보로는 같은 뿌리입니다. 지금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읽고 계시다면, 그 손안에도 1991년 헬싱키의 취미 프로젝트가 들어 있는 셈입니다.
11. 2026년 현재 리눅스 배포판 계보 지도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장의 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026년 현재 기준으로 각 가문의 현역 주자들입니다.
| 가문 | 뿌리 | 주요 배포판 | 패키지 | 주된 쓰임새 |
|---|---|---|---|---|
| 데비안 계열 | 데비안 (1993) | 우분투, 리눅스 민트, 칼리, 라즈베리 파이 OS | .deb / APT | 클라우드 서버, 데스크톱 입문, 교육 |
| 레드햇 계열 | Red Hat Linux (1995) | RHEL, 페도라, CentOS Stream, 록키, 알마 | .rpm / dnf | 기업 서버, 금융·공공 인프라 |
| 독립 계열 | 슬랙웨어(1993), 아치(2002), 수세(1992) 등 | 아치, openSUSE/SLES, 젠투, 알파인 | 가문별 상이 | 고급 사용자, 유럽 기업, 컨테이너 |
현재 시점의 좌표도 몇 개 찍어두겠습니다. 레드햇 가문의 현행 최신 메이저 버전은 2025년 5월에 나온 RHEL 10이고, 록키와 알마도 나란히 10 버전을 내놓았습니다. 데비안 가문에서는 우분투 26.04 LTS가 2026년 4월에 출시되어 향후 몇 년간 클라우드 표준 이미지 자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어떤 배포판을 고르든, 표에서 같은 행에 있는 배포판끼리는 지식과 명령어가 대부분 통한다는 점이 계보를 알아두는 실질적인 이득입니다. 우분투를 다룰 줄 알면 데비안과 민트가 낯설지 않고, 록키를 다루면 RHEL 환경에 바로 적응할 수 있습니다.

12. 리눅스 배포판 계보 FAQ
자주 나오는 질문들
Q. 리눅스와 유닉스는 결국 같은 건가요?
코드상으로는 남입니다. 리눅스 커널은 유닉스 소스 코드를 가져다 쓰지 않고 처음부터 새로 작성됐습니다. 다만 설계 철학과 사용 방식을 유닉스에서 물려받았기 때문에 "유닉스 계열(Unix-like)" 운영체제로 분류합니다. 혈연이 아니라 사상적 후계자에 가깝습니다.
Q. 배포판이 이렇게 많은 게 낭비 아닌가요?
중복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커널과 핵심 도구는 모두가 공유하고 그 위의 조합만 다릅니다. 서버용, 초경량 컨테이너용, 보안 점검용처럼 요구가 다른 곳에 각기 맞는 조합이 존재하는 것이라, 낭비라기보다 생태계의 분화에 가깝다고 봅니다.
Q. 지금 서버용으로 입문한다면 무엇부터 보는 게 좋을까요?
일반적인 웹 서버라면 자료가 가장 많은 우분투 LTS 계열이 무난하고, RHEL 기반 환경이 많은 회사에 갈 예정이라면 록키나 알마로 연습하는 편이 실무와 가깝습니다. 다만 조직마다 표준이 다르니, 소속될 환경의 표준을 먼저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Q. CentOS Stream은 쓰면 안 되는 건가요?
안 된다기보다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RHEL보다 반 발 앞서 가는 개발 브랜치이므로, 예전 CentOS처럼 "검증 끝난 RHEL의 복제품"을 기대하고 운영 서버에 쓰기에는 결이 맞지 않습니다. 그 용도라면 록키나 알마가 옛 CentOS의 자리에 더 가깝습니다.
13. 계보를 알면 다음 선택이 보입니다
1969년 벨 연구소의 프로젝트 실패에서 시작해, 상업화에 대한 반발로 GNU가 태어나고, 헬싱키의 취미 프로젝트가 심장을 채우고, 슬랙웨어와 데비안과 레드햇이 가문을 이루고, CentOS 사태로 다시 가지가 갈라지기까지. 리눅스 배포판 계보는 기술의 족보이기 전에 자유와 상업, 공동체와 기업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 온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계보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 예측 도구입니다. 어떤 배포판이 어느 가문 출신이고 누구의 손에 유지되는지를 알면, 그 배포판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로 갈아탈 수 있는지가 보입니다. 유닉스 전쟁이 형태를 바꿔 반복됐듯, 앞으로도 계보도에는 새 가지가 돋고 오래된 가지가 마를 겁니다. 그때마다 당황하지 않으려면, 지도 한 장을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만큼 든든한 준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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